범죄심리학자가 20년 된 여드름을 고치려다 화장품 브랜드를 만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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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범죄심리학을 전공했고, 현재 심리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화장품을 만들고 있다.

이 두 문장을 나란히 쓰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한다. 그래서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한번 써두고 싶었다.


20년 동안 나는 내 피부와 전쟁 중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여드름이 났다.

처음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춘기니까 곧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나아지지 않았다. 접촉성 피부염, 염증성 여드름.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냥 계속 있었다.

피부과를 수도 없이 다녔다. 약도 먹고, 시술도 받고, 좋다는 화장품은 거의 다 써봤다. 식단도 바꿔보고, 유제품도 끊어봤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피부는 오히려 점점 얇아지고 예민해졌다.

어느 날 세면대 앞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피부를 고치고 있는 걸까, 아니면 피부를 다그치고 있는 걸까.


뒤늦게야 깨달은 사실

심리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이도, 배경도 다 다른데 한 가지 패턴이 계속 보였다.

심리적으로 많이 힘든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피부에 뭔가 흔적이 있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피부 장벽을 무너뜨린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근데 그게 내 이야기라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다. 무너진 피부가 다시 스트레스가 되고, 그 스트레스가 다시 피부를 건드리는 구조. 거울 볼 때마다, 외출할 때마다, 누굴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그 느낌.

20년 동안 피부를 고치려고 했던 게 사실은 그 악순환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던 거였다.

깨닫고 나서 처음으로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하루에 두 번, 2~3분

제대로 쉬려면 특별한 데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가거나, 뭔가 특별한 시간을 내야 비로소 쉴 수 있다고.

근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매일 하고 있는 것 안에 답이 있지 않을까.

바로 화장품을 바르는 시간이었다.

하루에 두 번, 아침저녁으로 이미 다 하고 있는 거니까. 이 2~3분 동안 그냥 멍하니 바르는 게 아니라, 향을 맡고, 질감을 느끼고, 잠깐이라도 나한테 집중하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화장품이 약은 아니다. 근데 매일 직접 피부에 닿는 거니까 그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더라. 스트레스로 무너진 피부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다르게 접근해보고 싶다는 생각, 그게 오푸아나를 시작하게 된 이유였다.


빠른 길은 안 가기로 했다

빠르게 뭔가를 내놓는 방법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성분, 트렌디한 디자인, 바이럴 잘 되는 제형. 그쪽으로 가면 훨씬 빠르게 결과가 나오겠지.

근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푸아나는 나로부터 시작한 브랜드다. 20년 동안 내가 직접 찾아 헤맨 것들에서 시작한 거라서. 그래서 제품을 만들 때 기준을 하나만 세웠다.

내 부모님, 남편, 그리고 가장 소중한 친구들이 지금 쓰는 화장품을 오푸아나로 바꾸게 할 수 있는가.

그 기준을 통과한 것만 내놓으려고 한다.


과정을 먼저 기록하려는 이유

완성된 브랜드를 짠, 하고 내놓는 것보다 만들어가는 과정을 먼저 써두고 싶었다.

어떤 성분을 왜 선택했는지, 어디서 막혔는지, 뭘 바꿨는지. 나중에 돌아봤을 때 이 시간들이 남아있었으면 해서다.

오푸아나를 바르는 그 짧은 시간 동안만큼은, 오늘 하루 버텨낸 자신한테 잠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오푸아나를 만드는 이유다.